해야 할 일은 쌓여 있는데 전혀 관계없는 것에 몇 시간을 쏟아붓고 나서야 정신을 차린 경험, 한 번쯤 있으실 겁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아이디어는 늘 넘쳐났는데, 끝까지 완성한 건 손에 꼽을 정도였고, 왜 그런지 오랫동안 몰랐습니다. ADHD 진단을 받고 나서야 그게 의지 문제가 아니라는 걸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 구조를 가장 극단적으로, 가장 천재적으로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생각보다 훨씬 설득력 있게 다가왔습니다.

플라이트 오브 아이디어, 다빈치와 달리가 보여준 ADHD의 민낯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모나리자를 완성하는 데 걸린 시간은 16년입니다. 작품 크기는 가로 53cm, 세로 77cm. 그리 크지 않은 그림 하나에 16년이 걸렸다는 건, 게으름이나 무능함으로는 설명이 안 됩니다.
당시 다 빈치는 그림을 그리다가 입술 근육의 해부학적 구조가 궁금해지면 붓을 내려놓고 해부학 연구에 몰입했고, 그러다 문득 인간이 하늘을 날 수 없을까라는 생각이 스치면 곧장 비행 기구 설계를 시작했습니다. 67년의 화가 생활 동안 완성된 회화 작품은 고작 20여 점이었습니다. 반면 스케치 노트는 수천 장에 달했습니다. 저도 비슷했습니다. 기획서 초안은 서랍 가득이었지만, 실제로 마무리된 건 늘 몇 개 없었습니다.
이 특성을 정신의학에서는 플라이트 오브 아이디어(flight of ideas)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플라이트 오브 아이디어란 머릿속에서 여러 아이디어가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나거나, 하나의 주제에서 연상이 꼬리를 물며 전혀 다른 방향으로 튀어나가는 현상을 말합니다. ADHD의 핵심 인지 특성 중 하나로, 단순한 산만함과는 구별됩니다.
흥미로운 건, 이 특성이 또 다른 극단과 공존한다는 점입니다. 다 빈치는 최후의 만찬을 그릴 때 해가 뜰 때부터 질 때까지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붓을 잡았다고 전해집니다. 교황 레오 10세는 "이 사람은 결코 아무것도 이루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지만, 그 말이 나온 같은 시기에 다 빈치는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집중력으로 작품을 완성하고 있었습니다.
살바도르 달리의 경우는 더 직접적입니다. 1936년 런던 국제 초현실주의 전시에서 달리는 잠수복 헬멧을 쓴 채 강연장에 나타났고, 강연 도중 헬멧이 벗겨지지 않아 질식 직전까지 갔습니다. 나사가 너무 꽉 조여져 있었던 겁니다. 헬멧을 간신히 벗겨낸 후 달리가 한 말은 "저는 단지 인간의 심연에 잠수하고 싶었습니다"였습니다. 의도 자체는 천재적이었습니다. 자신의 예술 세계인 무의식, 즉 의식 아래 층위를 온몸으로 표현하려 한 것입니다. 문제는 준비가 전혀 안 돼 있었다는 것뿐이었습니다.
ADHD의 주요 특성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주의력 조절의 어려움: 자극이 없으면 집중 자체가 안 되는 조용한 ADHD 유형
- 과잉행동·충동성: 생각보다 행동이 앞서며 실행력은 강하지만 준비가 부족한 유형
- 과잉집중(hyperfocus): 흥미가 생긴 순간 외부 자극을 완전히 차단하고 몰입하는 상태
- 플라이트 오브 아이디어: 아이디어가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나며 연상이 끊이지 않는 현상
저는 스스로가 두 번째와 네 번째에 해당한다고 느꼈고, 진단 이후 그게 확인됐습니다. 처음 그걸 알았을 때 결함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작은 위로가 됐습니다.
뉴턴의 바늘 실험과 ADHD 뇌구조가 만들어낸 집착
아이작 뉴턴은 빛의 본성을 밝히기 위해 자신의 눈을 바늘로 직접 찔렀습니다. 17세기 당시는 세균과 병원균의 개념 자체가 없었으니, 살균 소독 없이 안구에 금속을 삽입한 셈입니다. 자칫 망막박리(retinal detachment)로 이어질 수 있는 행동이었습니다. 여기서 망막박리란 안구 내부를 채우고 있는 유리체가 망막이 찢어진 틈으로 밀려 들어가면서 망막이 안구벽에서 벗겨지는 상태를 말하며, 치료하지 않으면 영구 실명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17세기에는 이를 되돌릴 방법이 아예 없었습니다.
뉴턴이 이 실험을 한 건 단순한 호기심에서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한 번 어떤 생각에 꽂히면 먹지도 자지도 않고 그 생각만 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나무 아래서 사과가 떨어지는 걸 보고 우연히 만유인력을 떠올린 게 아니라, 이미 그 생각에 온종일 잠겨 있었기 때문에 그 순간이 연결 고리가 됐던 겁니다.
이 상태를 과잉집중(hyperfocus)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과잉집중이란 ADHD를 가진 사람이 흥미와 동기가 충분히 생겼을 때 외부 자극을 완전히 차단하고 특정 대상에 몰입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일반적인 집중과 다른 점은, 이 상태에 들어가면 배고픔, 피로, 시간 감각이 모두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ADHD 연구에서는 이를 뇌의 도파민 조절 기능과 연결 짓는데, 흥미 없는 자극에는 반응하지 않던 뇌가 강한 흥미를 만나면 폭발적으로 활성화되는 구조입니다.
이 맥락에서 다 빈치의 거울 글씨도 다시 보입니다. 그는 노트를 거울에 비춰야만 읽을 수 있는 방향으로 썼는데, 이는 난독증(dyslexia)과 ADHD의 공존 가능성을 시사하는 증거로 연구자들이 주목하는 부분입니다. 여기서 난독증이란 지능과 무관하게 문자를 인식하고 처리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신경발달 특성을 뜻합니다. 실제로 난독증 환자 중 약 3분의 1이 ADHD를 함께 가지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출처: 미국 소아과학회 AAP).
일론 머스크가 "내 머리는 폭풍 같아요. 대부분의 사람은 나처럼 되고 싶지 않을 겁니다"라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그는 테슬라, 스페이스X, 뉴럴링크를 동시에 이끌고 있습니다. 뉴럴링크는 뇌의 특정 영역에 칩을 삽입해 신경 신호를 읽고 처리하는 기술을 연구하는 프로젝트입니다. 충동적으로 보이는 SNS 행동이나 예측 불가한 경영 결정도, 생각보다 행동이 앞서는 ADHD의 과잉행동·충동성 특성으로 설명될 여지가 있습니다. 물론 이것이 진단은 아닙니다. ADHD라는 진단 기준 자체가 1987년에 처음 공식화됐고, 다 빈치나 뉴턴은 진단을 받을 수 있는 시대에 살지 않았습니다(출처: 미국정신의학회 DSM 역사).
제가 직접 겪어보니, ADHD는 의지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흥미가 없으면 뇌가 문자 그대로 작동하지 않고, 흥미가 생기면 멈출 수가 없는 구조입니다. 이걸 모를 때는 제가 게으른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주변 시선도 그랬습니다.
ADHD를 단순히 결핍으로 정의하는 시각도 있지만, 저는 다르게 봅니다. 다빈치는 완성하지 못한 그림이 수백 점이었지만 최후의 만찬을 남겼고, 뉴턴은 자기 눈을 찌를 만큼 집착한 끝에 빛의 굴절 원리를 밝혀냈습니다. 그 뇌구조를 이해하고 나에게 맞는 환경과 방향을 찾는 것이 먼저입니다. 약물 치료가 필요한 경우도 있지만, 그 전에 자신의 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아는 것 자체가 생각보다 훨씬 큰 변화를 만들어 줍니다. 저는 그 이해가 출발점이었습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의학적 진단이나 치료 조언이 아닙니다. ADHD가 의심된다면 반드시 전문 의료기관에서 진단을 받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