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ADHD 역사 (수렵사회, 뇌염유행, 메틸페니데이트)

by 엘리자56 2026. 6. 1.

18세기 의사가 이미 ADHD 증상을 책으로 기록했다는 사실, 알고 계셨습니까? 저는 이 사실을 처음 접했을 때 솔직히 좀 멍했습니다. 수백 년 전에도 이미 존재했던 특성이라는 걸 알게 된 순간, 이상하게도 마음이 가벼워졌습니다. 오늘은 ADHD가 어떻게 오해받아왔고, 어떤 역사를 거쳐 지금의 이해에 이르렀는지를 풀어보겠습니다.

수렵사회에서 생존 강점이었던 특성, 현대에선 장애가 되다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는 현대 사회가 만들어낸 병이 아닙니다. 여기서 ADHD란 주의력 유지의 어려움, 충동성, 과잉 행동을 핵심 증상으로 하는 신경발달장애를 말합니다. 기록을 거슬러 올라가면 1597년 셰익스피어의 희곡 《헨리 4세》에도 왕의 신하들이 "저 왕은 남의 말에 도무지 주의를 기울이지 못하는 고질병이 있다"고 묘사하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셰익스피어가 단순히 극적 효과를 위해 쓴 대사가 아니라, 당시 사람들도 분명히 관찰하고 있었다는 증거입니다.

18세기로 넘어오면 스코틀랜드 의사 알렉산더 크리크턴이 더 체계적으로 이 증상을 기록합니다. 그는 유럽 각지의 병원을 돌며 정신질환자를 관찰한 뒤, 《정신 혼란의 본질과 기원에 대한 연구》라는 세 권짜리 책을 냈습니다. 그 안에서 그는 "어떤 한 대상에 대해 필요한 수준의 주의를 유지하지 못하는 상태"를 별도로 구분해 설명했고, 이런 아이들은 작은 자극에도 쉽게 영향을 받으며 나이가 들면 어느 정도 호전되는 경향이 있다고 적었습니다. 18세기에 이미 충동성과 주의력 결핍을 구분해서 보고 있었다는 게 제 입장에서는 꽤 놀라운 부분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 특성이 지금까지 살아남았을까요? 저는 이 질문이 제일 흥미롭게 느껴졌습니다.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수렵 채집 사회에서 ADHD 특성이 오히려 생존에 유리하게 작용했을 것이라는 시각이 있습니다. 주변 소리에 즉각 반응하는 능력, 예측 불가능한 사냥 상황에서 빠르게 전략을 바꾸는 인지적 유연성, 그리고 먹잇감을 쫓을 때 지치지 않고 몰두하는 집중력. 현대 환경에서 산만함으로 보이는 것들이 다른 맥락에서는 분명한 강점이었습니다.

ADHD가 유전적 특성을 강하게 띤다는 점도 이 시각을 뒷받침합니다. 유전성(heritability), 즉 특정 형질이 유전적 요인에 의해 설명되는 정도는 ADHD의 경우 약 70~80%로 추정됩니다(출처: 미국소아과학회(AAP)). 이렇게 높은 유전성이 수천 년에 걸쳐 유지되었다는 것은, 이 특성이 단순한 결함이 아니라 어떤 생존 맥락에서는 선택적 이점이 있었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ADHD 역사에서 주목할 만한 또 다른 인물은 19세기 독일의 정신과 의사 하인리히 호프만입니다. 그는 진료실에서 만난 아이들을 관찰하며 직접 삽화를 그리고 동화를 썼는데, 그 주인공들이 하나같이 ADHD 증상을 가진 아이들이었습니다. 외부 자극에 쉽게 산만해지거나, 하늘만 보며 걷다가 물에 빠지거나, 충동적으로 행동하는 아이들이 이야기의 중심이었습니다. 당시로서는 드물게 의학적 시각으로 이 아이들을 바라보려 했던 것입니다.

수렵사회 관점에서 ADHD 특성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위협 감지 속도가 빠르고 즉각적인 반응이 가능함
  • 상황이 바뀔 때 기존 계획을 빠르게 수정하는 인지적 유연성이 높음
  • 흥미로운 목표(사냥 등)에 대한 과집중(hyperfocus) 능력이 있음
  • 일상적 반복 작업에는 지루함을 빠르게 느끼지만, 변화가 많은 환경에서는 강점을 발휘함

뇌염 유행이 바꾼 인식, 그리고 메틸페니데이트까지 오는 길

19세기까지만 해도 ADHD는 의학적 문제가 아니라 도덕적 결함으로 여겨졌습니다. 충동적으로 행동하거나 지시를 따르지 못하는 아이는 "사이코패스의 전조"나 "사회 부적응자가 될 아이"로 분류되었고, 처방은 언제나 엄한 훈육이었습니다. 제가 이 부분을 읽으면서 솔직히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어릴 때 "머리는 좋은데 의지가 없다"는 말을 들으며 자랐던 기억이 겹쳤기 때문입니다. 그 말을 하는 어른들도, 듣는 저도 그게 틀린 말이라는 걸 몰랐습니다.

전환점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왔습니다. 1917년부터 1928년 사이, 유럽을 중심으로 뇌염(encephalitis) 이 대규모로 유행했습니다. 뇌염이란 뇌 조직에 염증이 생기는 질환으로, 심각한 경우 신경계 후유증을 남깁니다. 당시 2천만 명 이상이 감염되었고, 살아남은 환자 중 일부에서 ADHD와 유사한 증상이 뚜렷하게 나타났습니다. 이 관찰이 결정적이었습니다. 그제야 의료계는 "이 증상이 성격 문제가 아니라 뇌의 기질적 이상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진지하게 검토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치료제 개발의 역사도 흥미롭습니다. 초기 치료제로 주목받은 것은 암페타민 계열 약물이었습니다. 암페타민의 전신이 되는 물질은 1893년 일본의 나가이 나가요시에 의해 처음 합성되었으며, 당시에는 기면증이나 무기력증 치료에 사용되었습니다. 현재 주된 ADHD 치료제인 메틸페니데이트(methylphenidate)는 1944년 합성에 성공했지만, 우울증과 피로 치료에 쓰이다가 ADHD 치료제로 본격 활용된 것은 1990년대에 이르러서였습니다. 여기서 메틸페니데이트란 중추신경계를 자극하여 도파민과 노르에피네프린의 재흡수를 억제하는 약물로, 전두엽 기능을 활성화하는 방식으로 ADHD 증상을 완화합니다.

처음에는 저도 이게 이상하다고 느꼈습니다. 과잉 행동이 문제인데 왜 자극제를 쓰는 건지 직관적으로 납득이 안 됐습니다. 그런데 ADHD 환자의 전두엽(frontal lobe) 기능을 들여다보면 이해가 됩니다. 전두엽이란 주의력, 충동 억제, 계획 수립 등 고차원적 인지 기능을 담당하는 뇌 영역입니다. ADHD 환자의 경우 이 전두엽에 세타파(theta wave)가 과도하게 나타나는 경향이 있는데, 세타파란 각성 수준이 낮을 때 주로 나타나는 느린 뇌파를 말합니다. 자극제가 이 전두엽을 깨워주는 역할을 한다고 이해하면, 왜 자극제가 치료제인지 훨씬 자연스럽게 납득이 됩니다. 실제로 치료 후 뇌파를 다시 찍으면 세타파가 감소해 있다는 보고도 있습니다(출처: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

오랜 시간 오해받아온 것치고는, ADHD의 역사는 결국 "이건 기질적인 문제다"라는 인식이 천천히, 하지만 확실히 쌓여온 과정이었습니다. 제가 직접 진단을 받고 공부해보니, 이 병의 역사를 아는 것 자체가 스스로를 이해하는 데 생각보다 훨씬 큰 도움이 됐습니다.

ADHD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이 특성이 단순한 결함이 아님을 먼저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수백 년의 오해를 거쳐 지금 우리는 뇌파와 신경전달물질 수준에서 이 질환을 이해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스스로 또는 주변 사람에게서 비슷한 특성을 발견했다면, 자책보다 먼저 전문가 상담을 권합니다. 나를 고치는 게 아니라, 나에게 맞는 환경과 방식을 찾는 것. 저는 그게 지금 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접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공개된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한 것이며, 전문적인 의학적 진단이나 치료 조언이 아닙니다. ADHD 관련 증상이 있다면 반드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CTVjSyC6rDE&t=11s


소개 및 문의 · 개인정보처리방침 · 면책조항

© 2026 엘리제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