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의 도중 갑자기 아무 관계 없는 생각이 떠오른 적 있으신가요. 중요한 발표 자리에서도 정신이 딴 데로 새고, 막상 퇴근하고 나서도 불안이 가시지 않는 그 느낌. 저도 그런 상태가 꽤 오래 이어졌습니다. 직장 생활에서 가장 오래 달고 산 감정이 불안이었고, 어느 순간엔 그게 만성이 됐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연차별로 다른 불안, 신입과 중간 관리자의 온도 차
신입 때의 불안과 중간 관리자가 됐을 때의 불안은 결이 완전히 다릅니다. 신입 시절엔 낯선 환경 자체가 두려움의 원인이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눈치를 봐야 하는 그 공기, 요즘 직장 문화에서는 이게 수동 공격적(passive-aggressive) 형태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수동 공격적이란 불만이나 적대감을 직접 표현하지 않고 무시, 침묵, 비협조 같은 간접적인 방식으로 드러내는 행동 패턴을 말합니다. 직접적인 갈등보다 오히려 더 소진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반면 연차가 쌓이고 중간 관리자가 되면 양상이 달라집니다. 위에서 내려오는 성과 압박과 아래에서 올라오는 팀원 관리를 동시에 감당해야 하는 구조가 됩니다. 제가 직접 겪어보니, 이 시기엔 불안의 종류 자체가 복잡해집니다. 단순한 적응 문제가 아니라 정체성과 역할에 대한 불확실감이 섞이는 느낌이었습니다.
특히 부장님 나이대, 즉 40대 중후반에서 50대 초반 관리자들은 갱년기 같은 신체적 변화와 함께 경력 이동의 제약, 인간관계 피로가 동시에 누적되는 시기를 겪습니다. 그런데 이분들이 정작 상담실에서 하는 말이 "저는 그렇게 힘들 처지가 아닌데요"라는 식의 자기 축소 발언이라고 합니다. "우울하면 안 되는 사람"이라는 고정관념이 스스로를 검열하게 만드는 겁니다. 주변에서 실제로 그런 모습을 봐온 저로서는, 이 이야기가 단순한 통계가 아니라 실제 사람 이야기로 읽혔습니다.
성인 ADHD, 게으름인가 성향인가
성인 ADHD를 질병이 아니라 '성향'에 가깝다고 보는 시각이 있습니다. 이 표현이 처음엔 조금 의외로 느껴졌는데, 생각할수록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 Attention Deficit Hyperactivity Disorder)란 주의력 조절과 충동 억제에 어려움을 겪는 신경발달적 특성을 가리킵니다. 성인 ADHD의 핵심은 잡생각이 끊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한 가지에 집중하려는데 다른 생각이 계속 끼어들고, 그 생각이 또 다른 생각을 불러오는 연쇄 반응이 이어집니다.
반면 관심 있는 일에는 하이퍼 포커스(hyperfocus) 상태가 나타납니다. 하이퍼 포커스란 특정 활동에 극도로 몰입하여 시간 감각과 주변 환경을 완전히 차단한 채 집중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저도 이 부분에서 멈칫했습니다. 좋아하는 작업에 빠지면 몇 시간이 훌쩍 지나도 모르는데, 반대로 흥미 없는 업무 앞에서는 10분도 버티기 어려운 그 편차. 이게 의지 부족이 아니라 신경학적 특성일 수 있다는 시각은 저에겐 꽤 새로운 관점이었습니다.
성인 ADHD를 의심해볼 수 있는 주요 특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잡생각이 많아 하나의 일에 지속적으로 집중하기 어렵다
- 관심 없는 일에는 집중이 거의 안 되고, 관심 있는 일에는 시간을 잊을 만큼 몰입한다
- 약속이나 일정 관리가 잘 안 되고, 지시 사항을 끝까지 따르지 못하는 경우가 잦다
- 진료 시간에 정확히 15분 늦게 도착하거나, 문을 닫지 않고 들어오는 행동 패턴이 반복된다
6개월 이상 이 중 4개 항목 이상이 해당된다면 전문 기관 상담을 고려해볼 수 있습니다. 국내 성인 ADHD 유병률은 공식적으로 집계된 수치는 낮지만, 실제로는 진단받지 않은 채 직장에서 어려움을 겪는 사례가 상당수라는 점을 정신건강의학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습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성인 ADHD로 진료를 받은 20~40대 환자 수는 최근 5년 사이 2배 이상 증가했습니다(출처: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불안 관리, 억누르는 게 능사가 아닌 이유
불안을 없애려고 억지로 참거나 무시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그 방식이 효과가 없다는 걸 몸으로 배웠습니다. 만성 불안(chronic anxiety)이란 일시적인 스트레스 반응이 아니라 특별한 자극 없이도 지속적으로 각성 상태가 유지되는 조건을 말하며, 이 상태에서는 의지만으로 이완되기 어렵습니다. 억누를수록 오히려 역설적으로 불안이 더 자주 올라오는 경험을 하신 분들이 많을 겁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 '적극적인 이완(active relaxation)'입니다. 적극적인 이완이란 단순히 쉬는 게 아니라, 이완 상태를 유도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특정 활동을 실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좋아하는 차를 마시며 오늘 하루를 천천히 되짚어보거나, 퇴근 후 짧게 걷는 루틴을 만드는 것이 그 예가 될 수 있습니다. 거창한 명상이나 운동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보다는, 자신에게 맞는 소소한 방법을 찾는 게 먼저입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정신건강 관련 보고서에서 직장 내 스트레스와 불안이 전 세계 생산성 손실의 주요 원인 중 하나라고 명시하고 있으며, 이에 대응하는 개인 수준의 회복탄력성(resilience) 훈련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출처: 세계보건기구 WHO). 여기서 회복탄력성이란 어려운 상황에서 무너지지 않고 다시 원래 상태로 돌아오는 심리적 회복 능력을 말합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이완 방법을 찾으라"는 조언을 들었을 때 처음엔 너무 단순하다고 느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저는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시며 멍하니 창밖을 보는 10분이 그날의 불안 수위를 꽤 낮춰준다는 걸 경험했습니다. 방법이 거창할 필요가 없었던 거죠.
긍정적인 감정은 기다리면 오지 않는다
긍정적인 감정은 저절로 찾아온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실제로 써보니 그렇지 않았습니다. 특히 만성 스트레스 상태에서는 도파민(dopamine) 보상 회로가 둔해진 상태이기 때문에, 즐거운 자극을 받아도 예전만큼 기쁨을 느끼기 어렵습니다. 여기서 도파민이란 뇌에서 분비되는 신경전달물질로, 보상 감각과 동기 부여에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합니다.
이 때문에 긍정적인 감정을 유도하려면 의도적인 행동이 필요합니다. 걷기, 가벼운 운동, 새로운 취미 시도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뇌에 작은 자극을 반복적으로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한 번에 크게 행복해지려는 시도보다, 작은 긍정 경험을 꾸준히 쌓아가는 편이 실질적으로 더 효과가 있다는 것이 인지행동치료(CBT, Cognitive Behavioral Therapy) 분야에서 널리 받아들여지는 접근법입니다. CBT란 생각과 행동의 패턴을 바꿔 감정을 조절하도록 돕는 심리치료 방법입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달랐습니다. 처음엔 "걷는 게 무슨 도움이 되겠어"라는 생각으로 억지로 시작했는데, 3일쯤 지나니 그 20분이 없으면 뭔가 빠진 느낌이 들더라고요. 긍정적인 감정이 쌓인다는 게 이런 방식인가 싶었습니다.
직장 생활에서 불안을 완전히 없애는 방법은 없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불안이 만성화되기 전에, 자신에게 맞는 이완 방법을 미리 찾아두는 것만으로도 꽤 다른 결과를 만들 수 있습니다. 이 글이 직장 생활이 버겁게 느껴지는 분들께 작은 실마리가 됐으면 합니다. 한 가지 더 덧붙이자면, 스스로 고통을 축소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입니다. 지쳐있다는 걸 인정하는 것부터가 시작입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정신건강 의학 조언이 아닙니다. 지속적인 불안이나 우울 증상이 있다면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상담을 권장드립니다.